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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벌 사서 한달 입는 여자 한벌 사서 열달 입는 여자

패스트 패션족 對 슬로 패션족… 그녀들이 '사는' 법

공장에서는 라면 한 그릇 값도 안 되는 원피스를 쏟아냈고, 소비자들은 인터넷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새 옷을 샀다. '패스트 패션'은 그렇게 지난 10여년 동안 패스트 푸드보다 무섭게 성장했다. 이 패스트 패션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작년 9월 영국의 국제빈민구호단체 '옥스팜'은 '슬로 패션' 캠페인을 벌이면서 "한 벌을 사도 오래 입는 제품을 고르고, 못 입는 옷은 필요한 지역에 나눠주자"고 주장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기왕이면 친환경 소재 옷을 고르고, 한 번 구입하면 여러 번 수선해 오래도록 입는 '슬로 패션' 바람이 불고 있다.

패스트냐 슬로냐…, 그것이 문제로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이제 옷은 한 사람의 성향(性向)을 명확히 보여주는 지표가 됐다. 유행에 민감한지, 정치에 예민한지, 미래지향적인지, 현실적인지 궁금하다면 그가 어떤 상표의 옷을 즐겨 입는지만 봐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www.gmarket.co.kr )에 따르면, 소위 '패스트 패션'족(族)의 평균 나이는 21.4세. 2008년까지만 해도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옷을 샀지만, 2009년엔 일주일에 1.5건으로 쇼핑 횟수가 늘어났다. 사는 횟수에 비하면 환불·교환은 적은 편이다. G마켓 이애리 여성의류 팀장은 "패스트 패션족은 맘에 안 들면 금세 다른 옷을 사기 때문에, 교환이나 환불 건수도 매우 적다"고 말했다. 이 업체에서 남녀 네티즌 13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실제로 응답자의 43%가 "작년 1월보다 올 1월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더 많이 사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들이 옷을 사는 이유는 가격이 저렴하고(57%) 종류가 다양한 데다(22%) 마침 유행하기 때문(19%)이다. 즉흥적인 쇼핑이다.

트렌드 컨설팅 업체 '에이다임'은 이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우리나라 '스파오', 스페인 '자라', 영국 '프리마크'와 '톱숍', 일본 '유니클로', 미국 '포에버 21' 같은 중저가 의류를 꼽았다. 모두 일주일에 2번가량 신제품을 쏟아내는 '패스트 패션'의 대표업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슬로 패션'족은 반면 옷을 두 달에 한 번꼴로 산다. 신사동 가로수길 편집매장 '플로우'와 온라인편집매장 '썸띵어바웃어스'가 단골손님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곳 손님은 2달에 1.2회가량 옷을 산다. 평균 나이는 32.7세. 경제력 있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다. 한 번 매장에 오면 30분 넘게 머무르며 옷을 둘러보고, 손님의 70%는 반드시 상표를 보면서 제품의 소재를 확인한다.

온라인으로 살 때도 오프라인 매장까지 직접 와서 입어본 다음 온라인에서 주문에 들어간다. 박윤정 실장은 "바느질·원단상태를 꼼꼼히 확인하는 고객이 많다. 실용적이고 오래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의 옷이 가장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인사동 '이새(isae)' 같은 친환경 염색의류, 페어트레이드 코리아가 설립한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 '그루' 등도 이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다. 꼭 공정무역, 친환경·유기농 옷이 아니더라도 '질 샌더' '구호'처럼 디자인이 깔끔하고 유행을 타지 않는 옷을 선호한다. 슬로 패션을 지향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더 센토르(The centaur)'의 예단지 실장은 "고객 중엔 옷에 대한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 많다. 대부분 가격보단 '얼마나 내게 어울리고 얼마나 오래 입을 수 있는가'를 따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