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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우산만큼은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정말 좋아서 고장이 잘 안나고 오래 쓸 수 있는, 그러면서도 예쁜 것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몇 번인가는 큰 맘 먹고 "비싸고 좋고 튼튼한" 우산을 샀었는데, 쉽게 잃어버린다는 점이 문제였다. 가방은 매일매일 어깨에 두르고 다니는 아이템이라 여간해서는 잃어버리지 않게 되는데, 우산은 비가 내릴 때에만 잠시 들고 다니는 거라, 특히 비가 잠시 오고 난 후 감쪽같이 화창하게 될 경우에는 쉽게 잃어버리게 된다. 우산이 비싸고 좋고 튼튼할 수록, 잃어버렸을 때의 상처 또한 깊더라.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회용우산이다. 지금은 구경하기도 힘든 대나무살의 파란 비닐우산이 지금은 이렇게 변해버렸다. 3000원이다. 스프링을 이용하여 자동으로 열리는, 그 흔한 자동장치도 없다. 손으로 끝까지 밀어서 펴야 한다. 그래서 더 좋다. 단순한 만큼 고장날 염려도 적고, 스프링잠금을 해제할 때의 찜찜한 긴장과 불편함도 없다. 어떤 패턴도, 어떤 색깔도 없이 온통 하얀 가운데, 표현되어있는 유일한 기호는 "MADE IN CHINA" 라고 쓰여있는 작은 스티커이다. 마음에 안 들면 떼어내도 된다.


앞서 말했지만 3000원짜리 싸구려이고 가격에 걸맞게 최소한의 기능만 가능한 수동식이지만, 새하얀 겉모습이 무척 세련되고 예뻐 보인다. 미니멀리즘의 극치인 조선의 달항아리나 매킨토시를 방불케하는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어쩌다 우연히 편의점에서 사게 된 이 우산을 애지중지하며 가지고 다녔었다. 이 우산을 들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웃는다. 왜 이런 걸 들고 다니냐고. 물론 악의있는 비웃음은 아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렇게 웃는 사람들 중 이 우산보다 더 아름다운 우산을 들고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날,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다가 도중에 백화점 지하의 식당가에서 밥을 사 먹고 집으로 오면서, 이 우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바깥으로 나올 일 없이 장소를 이동하다 보니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고, 그래서 잃어버린 것이다. 슬프고 아쉬운 마음 한 구석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편의점에 갔더니, 똑같은 우산들을 팔고 있었다. 그 때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 우산은 그 우산은 아니지만 여전히 이 우산인 셈이다.) 이 우산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어떤 우산보다도 편하고 아름답고, 어떤 우산보다도 더 강하게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해 주는 좋은 우산인 동시에, 몇 번을 잃어버려도 (단종되지 않는 한) 늘 한결같이, 큰 부담 없이 내 곁에 둘 수 있는 우산. 이 우산이야말로 MUJI-無印-(NO BRAND)의 철학에 가장 잘 부합하는, 가장 "무지(MUJI)스러운" 우산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출처 : 우산 - lazybirdc 님의 블로그